IDEAL ARCHITECTURE
이상건축
이상건축 생각하면 지금도 아쉬움 남아
“네 처음은 미약하나 그 나중은 창대하리라”.
1992년 9월 발행된 월간 <이상건축> 창간호에 실린 나의 창간사 첫 구절이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 창간사를 시작한 것은 뭣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관으로 이 땅의 건축 문화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포부가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상건축>출발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도 있었다.
잡지발행 경험도, 노하우도 전혀 없었던 내가 막상 월간 전문잡지를 발행하겠다고 나서고 보니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뭣보다 인적자원 확보가 문제였다. 지방에서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분들을 발굴해 모시고 잡지발행을 계속했던 것은 행운이었다.
판매와 광고가 힘들었다. 그리고 구독자 확보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대학의 건축 전공 교수들과 건축 관련 공직자들에게 <이상건축>을 증정했다. 그렇게 해서 <이상건축>의 지명도를 높여 나갔다. 편집방침은 <이상건축>이라는 제호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나갔다. 시류에 영합하거나 독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고 고집스럽게 창간 정신을 지키는 정도(正道)를 지향하며 끌고 나갔다. 지방에서 발행되는 잡지이나 중앙의 유사 잡지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눌 정도가 됐다.
강혁, 김봉열, 이종건, 이동언, 김성곤씨 등의 연재 글들이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봉열의 ‘한국 건축’은 단연 인기였다. 또 이동언의 날카로운 비평글도 매번 화제였고 다음 호에는 또 누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인가가 건축학계에서 관심거리였다. ‘이상건축 해외기행’이며 ‘유명 건축가 초청 강연회’ 등 당시 부산에서는 하기 힘든 사업과 행사도 했다. 그런대로 잘 나가던 <이상건축>이 힘든 고비를 맞게 된 것은 IMF때부터였다. 엄청난 출혈을 감내하면서 <이상건축>의 재정을 뒷받침해 온 일신설계가 IMF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부터였다.
결국 <이상건축>은 독자적인 생존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부산을 떠나 서울 선동에 조그마한 건물을 마련, 본사 겸 편집실을 옮기고 잡지발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2005년 1월호를 마지막 호로 창간된 지 약 12년 만에 발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부산에서 계속 버티면서 각계에 호소해서라도 지원을 얻어내는 노력를 하는 한편 제작비를 줄여 어려움을 견디어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있다. 부산의 뜻 있는 건축과 교수 등 건축가 중에는 <이상건축>의 발행 중단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이상건축>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쓰려오고 미련이 남는다. 부울경 건축학회가 <이상비평>이라는 제호로 건축비평 잡지를 창간하도록 내가 나름대로 지원을 하는 것도 그런 아쉬움 때문이다. (글: 이용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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