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 운반 - 현장조립 등 고려해서 설계 

슬라브 제외한 대부분의 공사 건식 수행

이 프로젝트는 2001년 7월 엄격한 보안 아래 계획이 시작되었다. 대상지 위치가 북한의 평양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시행사는 북한 남포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운영하는 세계평화통일재단가정연합 계열의 평화자동차그룹으로 교인들을 위한 성전과 시민들을 위한 다목적 홀 및 교육시설이 함께하는 복합 문화 및 집회시설을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재단과의 인연으로 이 일을 수주했으나 우리의 설계가 과연 어떻게 평양에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의문점을 갖고 작업에 착수하였다. 약 10개월간 기본계획을 한 후 2002년 8월 실시설계를 시작했다. 복잡한 보고체계 속에서 수시로 요청되는 도면제출요구와 검토 및 변경을 겪었고, 2003년 1월 15일 실시설계 납품 직전 또다시 실시설계 보완작업을 거쳐 8개월에 걸쳐 실시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설계 후에도 시행사와 CM 업무(건설사업관리) 계약을 체결하고 담당자가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7년 8월 준공하게 되었다. 


이 시설은 평양시 보통강 남측에 있으며 평화자동차가 운영하는 인근의 보통강 호텔과 연계하여 운영할 계획이었다. 관계자로부터 남측법인이 평양에 건물을 짓고 운영까지 맡은 첫 사례라고 들었다. 대지가 약 30,000㎡나 되는 대상지의 중앙에 차량과 보행 진입도로를 두어 대지를 동서로 나누었고 동 측은 평양시민들을 위한 커다란 다목적 잔디광장을 조성하여 평소에는 공원, 행사 때에는 광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서 측의 건축물 영역은 주 진입도로를 바라보며 2등분 하여 가운데에 센터를 설치하고 남북 측에 외부공간을 두되, 보통강의 조망이 바로 보이는 북측에는 수공간과 조각공원을 설치하고, 남측에는 주차장을 두어 서비스 동선 등의 진입을 분리하여 두었다. 중앙 주 출입도로 중앙에는 원형 회차 공간을 두어 방문객이나 VIP의 Drop Zone의 기능을 하게 하였다. 


센터 자체는 지하층 없는 5층 건물로 1층 레벨을 도로로부터 데크 형식으로 올려 조성함으로써 장마철 보통강의 범람으로 인한 수해에 대비하면서, 대(臺) 위에서 보다 좋은 수변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1-2층 규모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홀(10인 탁자 20개 배치 기준 200명 수용)을 두고 서 측 부속시설로 1층에는 다목적 홀 지원시설, 2층에는 사무실, 회의실 및 교육센터를 설치했다. 3-4층 2개 층 규모로 예배당(4인 의자 기준 500명 규모)을 두고 3층 부속실에는 교회사무실과 강의실, 4층에는 세미나실과 숙소를 두었고, 5층 옥상에는 전체가 보통강을 바라보는 전망대를 두면서, 부분적으로 교회 사택과 숙소를 일부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는 각 2개 층 규모의 대강당인 다목적 홀과 교회 성전은 동 측 입구 양 측면의 대형 계단을 두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였고, 서 측에 부속실과 서비스 동선을 두어 출입이 편리하고 관리도 쉽게 했다. 


전체적인 조형은 전체가 두 개의 ‘ㅁ’자로 이루어진 구조에 서 측은 ‘ㄷ’자로 지원실들이 감싸고 보통강과 잔디광장이 펼쳐진 우측 전면에는 거의 20m 높이의 기둥이 독립적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어 전체적인 조형은 비례와 조화를 바탕으로 단순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신전과 같은 조형을 구현하였다. 이는 신고전주의적 전통이 강하다고 느낀 북한의 도시와 공공공간의 맥락에 다소 부합하고자 한 것이다. 단지 전통적인 석재나 콘크리트 대신 철골과 알루미늄 외장을 사용, 현대적이고 첨단적인 분위기를 창출하려 했다. 다목적 강당과 성전 로비에서 강과 공원으로 열린 조망을 극대화하고자 거대한 유리 커튼월을 두어 북한의 기존 건축물의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와 차별화되는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장 파견이나 상주가 힘들고, 기술과 자재 수준이나 전문 인력의 조달 및 관리가 어려운 점 등을 감안, 슬라브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사를 건식으로 수행하도록 한국에서 사전에 모든 공정을 실험한 후, 조립공들과 자재를 배로 운송하여 현장에서 조립하는 불가피한 절차를 고려하여 계획한 결과였다. 


계획단계와 시공과정에서 현장 방문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설계 의도대로 구현되지 못했거나 미흡한 부분도 많아 아쉬웠다. 준공 후에도 마음대로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간혹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이 건물이 평양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다시 찾아가서 미흡했던 부분이나 이제 나이 들어 아프고 다친 부분이 있다면 치유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글 : 이용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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