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의 학교건물, 지나며 볼 때마다 흐뭇
건축주, 학생, 자연 모두를 감안한 설계 작업
동래여자중고등학교는 울산문화예술회관 다음으로 참여한 전국현상설계였다. 전국에서 참여한 9개의 설계사무실과 경합을 거쳐 당선되었다. 1984년 11월에 설계를 마치고, 85년 11월 27일 허가를 받았으나, 86년 설계변경 사항이 생겨 7월 19일 완료하고 천일개발과 로얄주택에 의해 시공되어 87년 3월 2일 입주, 87년 5월 30일 준공되었다. 울산문화예술이 먼저 현상설계에 당선됐으나 계약과 설계 장기화로 늦어지는 사이에 이 프로젝트가 먼저 준공돼 현상설계로 당선돼 준공된 첫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건축주인 동래학원은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공모지침 작성에 신중을 기했고 훌륭한 건축계획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지침 내용 중 주요사항은 본관을 그대로 옮겨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동래여자중고등학교가 과거 일신여학교로부터 시작된 오랜 교육적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본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원한 것이다. 훌륭한 교육관만큼이나 바람직한 건축관을 지닌 드문 건축주였다고 생각한다. 건축주가 진정으로 좋은 건축을 원했기에 더욱더 최선을 다해 설계에 임할 수 있었다.
일신은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첫 전국현상설계 당선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현상설계의 노하우를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 계속된 현상설계 참여와 높은 당선율의 신화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일신의 설계 전통을 만들어 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대단히 단순무식한 방법이었다. 초창기라 능력과 경험이 많이 부족한 설계사무소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시간 투자와 직원들의 노력이 기반이었다. 그 바탕 위에서 철저한 계획과 검증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다. 문헌뿐만 아니라 좋다는 유사사례를 수없이 답사하고,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한 모든 대안스터디를 수행한 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전문가라면 누구든 어디든 찾아가 자문을 받으며 끊임없이 feed back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안에 접근하는 것이다.
동래여중고등학교 현상설계를 수행할 때도 사례조사로 부산 시내 수많은 학교를 직접 답사하는 등 프로그래밍 작업에 충실을 기했을 뿐 아니라, 동래학원이 보유한 모든 수목의 종류, 크기, 수량까지도 낱낱이 조사하여 보고서에 수록함으로써 학교 재단 측을 감동을 줬다. 이러한 철저한 현장조사가 당선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계획안은 세 가지 관점과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재단으로 대표되는 건축주는 최상의 환경을 최소의 비용을 들여 조성하기를 바라고, 이 학교를 이용할 학생들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편하고 쾌적함이 우선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제공할 땅(자연)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개발과 희생을 통하여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주요 시설물들이 지형에 순응하면서 기존 자연요소를 최대한 보존 활용한다는 원칙 하에서 계획하였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고 환경조건에 부합하는 경제적인 계획을 하면서 모든 수목의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나무 한그루 한 그루의 입장에서 계획에 임하였다. 기존 학교의 전통성 및 역사성을 표현하고 본관을 중심으로 한 시설물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였으며, 원활한 교통계획과 장래의 발전계획을 위한 유보지를 확보했다. 학교가 여학교인 만큼 그들에게 보다 적합하고 아늑한 정서적인 환경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계획상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교사동의 정남향 배치를 고수하여 밝고 건강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조 조건이 양호하고 숲으로 쌓여 있는 곳을 찾아 곳곳에 휴식 공간을 두고 그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교정에 가득하기를 희망하였다. 경사를 이용하여 시설물을 설치하며 완만한 구배를 가진 곳은 정지(整地)하여 넓은 체육 공간을 형성하여 건강한 성장의 기반이 되었으면 하였다. 기능이 상이한 시설을 부지 내에서 분리하고 각 시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그사이에 두어질 수 있도록 하여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기하였다. 계획의 최후 단계까지 고민했던 것은 체육관의 위치였는데 중고등학교 및 외래객의 이용 동선을 고려하여 중학교동과 고등학교동 사이에 위치시켜 지역과 함께 하는 학교의 비전을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도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 최상의 공간을 제공하려는 건축가의 꿈을 더한 것 같다. 심사결과 발표 후, “너무 화려하다” 또, “대학캠퍼스 같다”는 말들도 들렸지만, 참가한 사무실 안들이 토목과 수목 현황을 무시한 안들이 많았고, 학생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라고 공감한 분들이 공감하여 당선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고속도로에서 부산으로 들어서면서 구서IC를 지나면서 왼쪽 산기슭에 서 있는 이 학교가 눈에 들어오면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글 : 이용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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